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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KBS 1라디오 97.3 <집중인터뷰> 쉼박물관 박기옥 고문님 방송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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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라디오 97.3 <집중인터뷰>
쉼박물관 박기옥 고문님 방송인터뷰
2010년 2월 26일(본방송), 2월 27일(재방송)

방송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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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아나운서 유애립니다!



요즘 잘 사는 방법 '웰빙' 못지않게

잘 죽는다는 의미의 '웰다잉'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죽음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우리 전통의 장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특별한 박물관이 있습니다.

바로 평범한 주부가 자신이 살던 집을 개조해 만든 '쉼 박물관'인데요.




오늘 집중인터뷰에서는..

'쉼 박물관'을 설립한 박기옥 고문을 초대해서

전통상례문화를 통해본

우리 선조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과, 해학 그리고 예술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오늘 유애리가 주목한 이 사람은..

'쉼 박물관' 박기옥 고문입니다!





박기옥 고문은..

이화여대 사학과에서 수학했고..

20대 때부터 우리 전통의 것을 수집하기 시작해..

지난 2007년 전통문화상례전시관인 '쉼 박물관'을 설립해서

현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MC유애리: 이곳 쉼박물관이 벌써 서울의 명소가 된 것 같은데 소개해주십시오. 어디 있는 어떤 박물관입니까?


박기옥: 주소는 종로구 홍지동 36-20번지고, 장소는 세검정 삼거리에서 상명대학 바라보시고 왼쪽으로 보시면 홍지문이 있습니다. 홍지문 앞으로 오시면 주택으로 들어오는 다리가 있는데 다리 난간에 이정표가 있고 다리로 죽 올라오시면 홍지마을이라는 관리실이 있고 그곳을 통과해서 왼쪽으로 올라오면 왼쪽집입니다.


MC유애리: 이렇게 주택가에 살던 집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이군요. 이름이 쉼박물관입니다. 어떻게 이런 이름을 지으셨어요?


박기옥: 집도 쉼이고 만남도 쉼이고 영면하는 것도 쉼인데, 영면을 저는 쉼 중에서도 자는 것이고 그야말로 쉬는 것이고. 전에는 죽어서 없어지는 건가 했는데 건장한 남편이 자는 듯이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는 진정한 쉼이 이것이구나 생각하고 쉼이란 이름의 박물관 이름을 지었는데, 이제 그것이 우리 박물관이 복잡한 도심의 가까운 지역이면서도 정말 공기 좋고 세검정이란 곳이 홍지문과 성곽을 담을 이루고 있고, 이 복잡한 데에 잠깐 쉬어가시면서 만남의 장소도 되고 그런 박물관이 되고파서. 강원도 강릉에 열화당이라는 문인들이 쉬고 가게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대요. 그래서 저는 혼탁한 서울공기를 떠나서 쉼박물관을 서울의 열화당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쉼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감히 지었네요.


MC유애리: 이 박물관에는 특히 전통문화상례전시관이 있다고요. 이런 박물관을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습니까?


박기옥: 50여 년 전에 내가 일찍이 한국적인 걸 좋아해서, 처음엔 나막신이나 떡살, 작은 소반 같은 걸 모으면서, 취미가 수집이라고 할까요. 자주 드나드는 어느 날 아주 소박한 상여에 부착됐던 여인의 목조각, 목조형물을 보고 그 색감과 우직한 문양에 매료돼서 모으는 중에, 내가 이걸 좋아하는 줄 알고 각 수집상들이 일단은 자기네들 손에 들어오면 나한테 연락을 하더군요. 그래서 보면 볼수록 그냥 하나하나에 특색과 의미와, 너무 재밌고 아름다워서 수집했는데 이게 죽음을 다루는 박물관이 될 줄도 모르고 오늘에 이르러서 쉼박물관이 태동된 것 같습니다.


MC유애리: 그러니까 골동품 여러 종류를 모으시다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목조각이었군요. 상여에 얹는 거였죠?


박기옥: 네. 수량으로는 이게 많지만 등잔도 있고 떡살, 목기랄까 다른 것도 많죠. 많은 중에 나는 평생을 다른 가구에서 생활을 안 하고 우리나라 목가구, 우리나라 전통집기들을 사용하고 있어요.


MC유애리: 그런데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일. 사실은 가족들이 같이 살던 보금자리기 때문에 일반에 공개된다는 것, 꺼려지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가족들 반응은 어떠셨어요?


박기옥: 나이 있는 엄마가 이런 걸 이제 시작하려고 하니까 고생도 할 것 같고 그 다음에 개인박물관을 사립박물관을 말하자면 개인이 운영하기에는 더더군다나 우리 한국 실정에 어렵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런 면도 있겠고, 또 그런 면에 부담을 가지고 반대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처음엔 그렇게 반대하더니 애들이 1남3녀인데 세 딸이 다 미술을 했어요.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도 역시나 우리 전통예술품을, 말하자면 골동품을 좋아하니까 그냥 지금은 그 당시에는 반대 아닌 반대랄까... 엄마 힘들까봐 그랬는데, 이제는 해놓고 보니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뜻도 있고 하니까 쉼박물관에 관한 책임의식이랄까, 엄마가 갖고 있는 걸 차츰 이제 이해하고 있더군요.


MC유애리: 정말 오랫동안 수집한 소장품을 이렇게 살던 집을 개조해 전시하니 참 뿌듯하실 것 같아요.


박기옥: 네. 왜냐면 우선 다녀가신 분들이 좋아하시고, 많이 뿌듯하죠. 그래서 저녁이면 한 바퀴 둘러보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죠.


MC유애리: 이 집 외관을 보니 일반 가정집으로 쓰셨던 집인가 할 정도로 박물관 모양을 많이 갖추고 있는데요. 덕수궁 석조전 같기도 하고요.


박기옥: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용기를 냈는데요. 그야말로 남편과 마지막 여생을 좀 편안하게 지낼까 싶어서 리모델링을 1년을 집을 비워가며 다시 했건만 입주하는 날 너무나 건장했던 남편이, 입주하는 날 병이 나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돌아가시고 가만히 앉아있으니까, 나 혼자 이 집을 다 쓰겠나... 또 모았던 유물도 있고 한데 한 번 박물관을 생각해봤죠. 큰딸 둘째딸이 그렇게 반대를 했어요. 그래서 오픈 날은 걔들한테는 내가 그냥 완강히 이제는 엄마를 더 말릴 수 없으니 너희 둘이 안 오면 될 거 아닌가. 이러면서 지네 아빠 기념일날... 기념 겸 가오픈을 했어요. 오픈퍼포먼스를, 충청도의 이걸재... 소리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 분을 모시고. 그 다음 우리 서민상여놀이... 지게에다가 흰 덮개를 씌우고 그 분이 모셔온 분들과 지게상여놀이 퍼포먼스를 했죠. 그랬더니 문화계에서 몇 분이 오셔서, 세상에... 우리 한국에 미술관 박물관이 500여 개 되는데 바라던 박물관이라고 그렇게들 환영하면서 허가 과정에서도 협조를 해주셨다고 할까... 승인이 쉬웠습니다.


MC유애리: 이곳 쉼박물관... 전시실이 모두 몇 개죠?


박기옥: 14개의 크고 작은 전시실이 있습니다. 식당에는 제가 아침저녁으로 거기서 식사를 하면서 공개를 해드리는 건데 식당과 부엌은 우리 여인의 영역이니까 거기는 여인목조관, 여인목조형물을 전시했고 밥상보랄까 그런 걸 현대감각이 있는 것도 좀 가미시키고. 그래서 그 조각보도 이제 보여드리고. 창가리개.. 말하자면 커튼이죠. 그리고 제사를 모시던 제기 네 가지가 전시돼 있고. 명기라고 돌아가신 분들이 내세의 생활도 우리 생활과 똑같이 하시란 의미에서 부장품으로 넣어드리던 작은 소꿉 같은 백자 명기가 있는데 그것도 전시돼 있고


MC유애리: 그리고 상여가 전시돼 있죠? 상여가 참 화려하네요.


박기옥: 안방에 전시돼 있어서... 제가 2007년도 10월에 오픈했는데, 안방에 침대 대신 상여가 있는 이색박물관이라고 하면서 크게 보도를 해주셨어요.


MC유애리: 그러고 보니 우리의 전통 선조들의 장례문화는 어두운 것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망자를 위로하고 더 화려하게 장식하는 목조각들이 많네요.


박기옥: 바로 그거예요. 물론 슬프지요. 가족을 보내는데 오죽 슬프겠습니까만, 기왕 피할 수 없이 보내드려야 되는 게 우리 인간사 아닙니까. 탄생의 문을 통해서 나왔다면 마침의 문을 통해서도 또 가는 게 자연의 순리인데 기왕 가는 거 즐겁게 장엄하게 기쁘게 보냈던 흔적이 바로 상여에 있는 것 같아요.


MC유애리: 상여 위에 목조각 장식도 많고 매듭도 많고. 이게 또 신분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었겠지요?


박기옥: 네. 그게 더 아름다운 것이 조선시대 관혼상제는 능력이 있으면 그야말로 맘대로 해라였대요. 그렇기 때문에 지체가 높거나 정말 재력이 있거나 하면 그냥 우리 집모양이더군요. 상여의 99% 100%가. 그런데 화려하게 마지막 가시는 데는 얼마든지 화려하게 보내드렸던 겁니다. 심지어 저희 집에 있는 상여는 한 60분 가까이 운구한 상여로 알고 있어요


MC유애리: 쉼박물관에 와서 상여를 와서 보신 분들 반응은 어떻게 나옵니까?


박기옥: 너무나 좋아하고 고맙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단 한 분, 우리 문을 열다가 뭐하는 박물관이냐고 그러면서 들어온 분이 있는데, 그 분은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는 그냥 나갔대요. 그런데 내가 기독교교회를 나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우리의 민속품이고 풍속이지 종교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그야말로 화석화되고 없어져가는 걸 정말 보존해주고 보여줘서 너무 고맙다고, 시가 그냥 절로 나올 정도로 예뻐하고 좋아하고 깜짝 놀랐대요.


MC유애리: 박기옥 여사께서 오랫동안 골동품을 수집하시면서 아꼈던 것을 공개해서 나누고 계시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아끼는 소장품은 어떤 겁니까?


박기옥: 뭘 자랑할까요? 상여랄까요 요여랄까요. 너무 아름답습니다. 조그마한 가마인데 옛날에 조상들은 돌아가시면 혼과 백 영혼과 시신이 분리된다고 해서 요여에다가 혼을 모시고 조그마한 부장품을 형편에 따라서 거기다가 모시고, 또 그야말로 좀 믿는 분들은 신주를 모시고 부적도 넣어서 장지까지 갔다가 시신을 다 모셔놓고 부장품 모셔놓고 거기다가는 혼을 모시고 집에 들어와서 거기서 가정에 따라서 한적한 데다가 빈청을 차리죠. 그리고 차려서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올리는데 그 요여의 아름다움은 좀 보셔야 될 것 같아요. 너무 아름다워요.


MC유애리: 처음 봤다는 분들도 많겠는데요


박기옥: 태반이죠. 50대 이후 시골에 사셔도 그 분들 말이 자기네들 상여 집에 무서워서 돌아다니지 보지 않고 멀리서 가는 건 봤지만 이렇게 가까이서는 못 봤다고 너무 고마워하고요.


MC유애리: 쉼박물관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학술세미나도 열린다고요?


박기옥: 물론입니다. 계속에서 학술세미나를 열 것이고 그런데 다행히도 사라져가는 전통상례문화 몇 대학에 상례문화학과가 있고 장례문화연구학과가 있고 대학원도 있고 젊은이들의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정말 다행입니다.


MC유애리: 그리고 우리의 전통상례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차원에서 순회전시도 하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어느 나라에 보내셨습니까?


박기옥: 프랑스의 현대미술관에서 현대예술품과 우리 쉼박물관의 인물조형물... 인물에 대한 목조각품을 전시한 적이 있습니다.


MC유애리: 이렇게 박기옥 고문님께서 쉼박물관을 열고 운영하시면서 우리 장례문화라든가 전통상례문화, 또 죽음에 대해서도 예전 생각과는 많이 달라지셨겠는데요?


박기옥: 예전 장례는 통곡을 했는데, 그 이유가 우리가 한이 많기 때문에 그 날 울음으로써 한을 표출했다는 말도 있더군요. 그랬는데 통곡을 하면서, 물론 슬프지만 축제처럼 슬픔을 승화시켜가면서 기왕 가시는 분에게 잘 가시라, 그 다음에 또 울고 있는 상제께는 잠깐이나마 울음을 멈추시라는 의미에서 코믹하게 물구나무놀이를 한 것도 있고 장난기 있는 해학적인 조각도 있어요. 그리고 상여꾼들도 얼마나 무겁고 힘들겠어요. 그런 분에게도 기왕이면 코믹하게 재밌게 가시라는 의미에서 물구나무놀이랄까 그런 장난기 어린 걸 그 옛날 목수가 그런 조형물을 만들었다는 건 민족의 예술성을 높이 봐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MC유애리: 그리고 인물사의 조각상의 표정도 근엄하지 않고요


박기옥: 다 익살스럽고, 우리와 가깝죠.


MC유애리: 요즘 장례문화를 보면 상당히 많이 간소화됐고, 조화로 대신하는 장례식이 일반적입니다. 이런 장례문화로 달라진 거 보면 어떤 생각 드십니까?


박기옥: 너무 아쉬워요. 왜냐하면, 이게 말이죠. 물론 시대 변화에 따라서 옛것만... 무겁고 인력이 많이 필요한 것만 가지고 하자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우리 것이 있는데 좀은 반영해야 되지 않나. 더불어 제가 감히 국장유감이란 말을 한 번 할게요. 오래 전에 박물관 생각도 안 할 적에 들은 얘긴데, 원로 권화백님께서 아주 걱정스런 말씀으로 고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 때 불란서 기자하고 마침 장례식 광경을 보셨대요. 그런데 그 기자 말이, 그래 당신네 나라는 역사도 깊으니까 당신네 장례식도 좀 보고, 또 좀 좋겠지 하고 같이 지켜보는데 장례영구차가 나오는데 보니까 아나운서는 국화 몇 만 송이를 심은 아름다운 운구차라고 얘기만 계속 되풀이하는데 당신께서 부끄러웠다고. 그 때뿐만 아니라 얼마 전 고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때 장례식도 똑같았고.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은 사진에다가도 검은 그야말로 표시도 없이 영정사진의 표시도 없이 운구트럭 위에 큰 사진액자만 그야말로 모시는데, 이건 사진 운반이지 어찌 이게 유구한 역사가 있는 나라의 영구차일 수 있을까 해서 사실은 슬펐어요. 속상해하고 있어요.


MC유애리: 우리 전통의 아름다운 장례식이 지금도 좀 되살려졌으면 좋겠군요.


박기옥: 그런데 이걸 갖다가 고스란히 되살리기보다는 약간 어느 구석 어느 면이든지 이제는 국민소득도 이만큼 됐으니까 조금 가미를 시켜야 되지 않을까. 많이 아쉽습니다.


MC유애리: 쉼박물관을 통해 앞으로 전시하고 싶은 문화행사가 있으십니까?


박기옥: 2008년도 제임스 토렐... 빛의 작가의 전시가 유일하게 정말 우리 쉼박물관으로선 대단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게 제임스 토렐이 세계적인 분이기 때문에 그 분 도록에 엄연히 기록돼 있는데, 그 분도 우리 박물관, 더더군다나 위치.... 홍지문과 성곽을 두고 집에는 바위가 있고 그 세검정 절경에다가 우리 상여를 보고는 너무 놀라고 그 다음에 설립정신과 맞다고 하면서 우리 박물관에 낙점돼서 정말 약 두 달 반, 석 달 가까이 전시했고요. 그 다음 독일 함부르크 국립박물관장이 다녀가면서 한국에 다녀간 보람이 쉼박물관을 봤다는 보람으로 적어놓고 가서 제가 기사를 봤어요. 그래서 정말 저는 외국에 많이 알리고 싶고, 그 다음에 계획은, 크게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기메박물관에 1년에 몇십만 관광객이 드나드는 유명한 곳인데 거기서 우리 상례문화를 소개하고파서 지금 섭외중이랄까요. 욕심을 좀 내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를 꼭 보여드려야 되겠어요.


MC유애리: 이렇게 쉼박물관을 운영하시고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시면서 진정한 의미의 참살이랄까요. 또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개인적으로도 많이 하실 것 같은데요.


박기옥: 네. 이젠 우리가 가는 걸 안식의 즐거움으로 생각해야 되겠고요. 평소에 덕을 쌓으면서, 우리 남편께서 덕을 많이 베풀었더군요. 그래서 돌아가신 날 보니 고학생 10여 명이 영전에 편지를 써놓고 울고 가고. 이래서 나중에 알고 보니 각각 아무도 모르게 후학을 길렀더군요. 그래서 그 양반 1주기 때 감사비를 우리 묘소에 세울 정도로 덕을 베풀고 갔더군요. 그런 준비된 계획적인 덕보다도 작은 일이나마 덕담도 좋고요. 여유가 되면 약간의 물질도 좋고 서로 나누면서 사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 다음 천수를 살았다 싶을 때는 의연하게 맞이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네요.


MC유애리: 오늘 정말 박물관 이야기뿐만 아니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말씀까지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기옥: 감사합니다



집중인터뷰

오늘은 '쉼 박물관'을 설립한 박기옥 고문을 초대해..

전통 상례문화를 통해 본

우리 선조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과, 해학 그리고 예술성에 대해

삶의 지혜에 대해서 말씀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유애리였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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